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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20 이효영 보호대상과 통일역군 사이, '탈북민-창업가'의 비/형성 : 탈북민 창업지원 사례에서 발현하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문화기술지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지도교수: 조문영


본 논문은 한국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바탕으로 등장한 탈북민 창업지원 장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현상이 어떻게 발현하는지 탐구하는 문화기술지이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많은 논의는 그것의 실재하는 면모를 포착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규정해왔다. 본 논문에서는 현장의 정치경제적 지형 변화와 조응하면서 개인의 사고와 실천 및 사회제도를 시장지향적으로 재편하는 양상으로 ‘신자유주의’를 이해한다. 현장의 긴장과 갈등을 살피는 것에 역점을 두어, 행위자들이 선택한 실천의 연속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내는지 해석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010년 전후로 두드러진 사회 현상 중 하나는 창업지원사업의 활발한 등장이다. IMF 이후 실업을 해결하는 대안적 선택이었던 창업이 최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싱글맘’, ‘장애인’, ‘결혼이주여성’ 같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사업이 기획되면서, 탈북민도 대상집단의 하나로 창업을 지원받게 되었다. 창업지원사업의 등장은 사회 취약집단에 공공부조 대신 자활사업을 제공하고, 사회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하는 복지 신자유주의화 과정과 관련한다. 탈북민 창업지원사업은 ‘적’과 ‘동포’를 넘나드는 탈북민의 다중성 및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과 얽혀 창업지원 장의 동학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준다.
본 논문은 지난 2018년 9월부터 2019년 4월까지 한 사회단체가 진행한 탈북민 창업지원사업 ‘유니쿡’을 현장으로 한다. 주된 연구방법은 참여관찰과 인터뷰이며, 탈북민 교육생과 탈북민 점장, 사업운영단체 직원 등 총 34명이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유니쿡은 기업, 정부 공공기관, 민간재단, NGO, 사회적기업까지 매우 다른 성격의 주체들이 거대한 협업 조직을 만들어 운영한다. 그중 사업운영에 주된 역할을 하는 NGO는 단순한 탈북민지원단체가 아니며, 국내외 개발협력과 사회적경제 관련 사업 비중이 큰 단체이다. 탈북민 창업지원 장에서는 협업단체의 다양성, 사업운영단체의 복합성, 탈북민의 다중적 정체성 등 참여자들이 가진 복잡한 특성으로 인하여 긴장과 갈등이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사실은 세 가지이다. 첫째, 탈북민 창업지원 장은 ‘복지’ 및 ‘투자’의 속성을 모두 가진 ‘창업지원사업’의 이중성과 남북분단상황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사회적 ‘보호대상’이자 평화통일을 매개할 ‘통일역군’이라는 ‘탈북민’의 이중성이 교차한다. 둘째, 창업기회를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탈북민들 간에 형성한 ‘협력’적 관계는 그들 간의 감정적 연대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경쟁/협력, 가족/개인 등의 이질적 개념이 자유시장경쟁체제 안에서 창업에 성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 안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창업지원이 탈북민을 위한 ‘복지/투자’인 이중적 상황은 ‘교육장/사업장’인 창업지원사업 공간의 이중성과 맞물려 행위자들 간 갈등을 극대화하였다. 교육자는 고용주로, 교육생은 알바생으로, 창업가는 근로자로 전유되며 역할은 모호해졌다. 창업을 목적으로 사업에 참여한 탈북민들은 창업을 지원받지 못하면서, ‘보호대상’으로서 주어졌던 ‘복지’도, ‘통일역군’이 되기 위해 기대하였던 ‘투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결과적으로 현장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이질적 개념의 경계를 허물고 상황을 모호하게 만들어 결과의 책임을 행위자 스스로 지고 상황을 자기주도적으로 헤쳐나가게 만들었다.
본 논문은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유주의’를 단일한 총체로 보는 관점을 넘어 실재하는 ‘신자유주의’의 양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현장 기반의 미시적·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둘째, 행위자들 간의 긴장과 갈등을 분석하여, 한국의 복지 제도적 특수성, 분단정치, 탈북민에 관한 다중적 인식 등 복합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창업지원 장을 시장지향적으로 재구성하는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세밀히 살피고자 노력하였다. 결국, 탈북민, 창업, 복지, 분단 등 각각 독립된 연구영역은 학문적 경계를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시공간적 배치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