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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21 김승윤 국민국가의 카오스 : 한국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의 형성과 균열하는 상상의 지리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지도교수: 조문영

키워드: 에티오피아 ;  참전용사 ;  한국전쟁 ;  담론 ;  상상의 지리 ;  냉전 ;  국민국가 ;  Ethiopia ;  War veterans ;  Korean War ;  Discourse ;  Imagined geography ;  Cold War ;  Nation-state

본 연구는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담론의 지형을 분석하고, 담론의 질서 안에서 나타나는 ‘냉전’과 ‘국민국가’의 (재)구성 과정을 살핀다. 에티오피아의 참전과 관련된 다양한 언표들은 독특한 구조와 규칙을 가진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 잡는다. 참전용사 담론은 상상의 지리 “에티오피아”를 생산하고, 이는 냉전 기억과 두 나라의 관계가 구성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참전용사 담론과 냉전 지형의 관계를 규명하여, 참전의 맥락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상상되는 냉전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또한, ‘국민국가’를 동질적이고 통합적인 공동체로 상상하는 강고한 믿음을 논파하려 한다. 이에 따라 연구자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담론이 참전의 역사에 관하여 말하는 대상과 방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역사가 밀려나는가? 둘째, 참전용사 담론이 생산하는 상상의 지리 “에티오피아”는 냉전을 기억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과 효과를 발휘하는가? 셋째, 참전용사 담론이 전제하는 “에티오피아”라는 국민국가 단위는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고 구체화하는가?
연구의 주요 현장은 춘천과 서울이다. 춘천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주요 전투지역으로, 현재 에티오피아의 참전에 관한 기념관과 관련 단체가 소재한 곳이다. 연구자는 춘천을 방문하여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식당에서 일하며 약 10개월간 현장연구를 수행했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장은 참전용사 담론의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하여 담론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한국 사회가 에티오피아의 참전을 기억하는 방식은 두 나라 현대사의 변곡점들과 맞물리며 구성되어왔다. 1990년대부터 형성된 참전용사 담론은 신화, 상상, 발전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공산 진영에 맞서 한국을 지켜줬지만 결국 악에게 패배해버린 “자유의 수호자” 에티오피아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영웅 신화의 형태로 기억되고 있다. 신화 속 영웅들의 땅“에티오피아”는 연속적인 하나의 역사를 토대로 형성된 국민국가라는 상상의 지리로 재현된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도움에 보답하려면 한국이 나서서 그들의 개발을 도와야 한다는 ‘보은과 발전’의 서사가 자리 잡는다.
3장은 한국과 에티오피아가 제3세계 비동맹주의와 관계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한국전쟁과 참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전쟁과 냉전에 대한 두 나라의 인식과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냉전을 자유/공산의 이분법적 대결로만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은 제3세계 비동맹주의를 경유한 복잡다단한 역사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적극적으로 비동맹의 조류에 동참했다.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보여준 제3세계 사회주의 연대의 역사는 한국의 참전용사 담론이 상상하는 “에티오피아”의 형상과 사뭇 다른 결을 드러낸다. 이처럼 냉전은 글로벌한 차원에서 펼쳐진 ‘지구사’였고, 기존의 인식론은 한국전쟁과 냉전의 중층적인 맥락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4장은 노량진의 에티오피아 식당 ‘셀람’에서 진행한 현장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참전용사 담론이 상상하는 국민국가 “에티오피아”를 재검토한다. ‘셀람’은 한국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에게 자국어를 사용하면서 익숙한 음식을 먹고 에티오피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집과 같은’ 장소다. 하지만 이곳은 국민국가 에티오피아가 처한 곤경, 즉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뒤얽힌 종족 갈등의 단층선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이 경험하는 균열은 ‘셀람’의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음악은 정치적 이슈와 맞물리며 미묘한 긴장을 조성하고, 이 과정에서 담론이 재현하는 동질적인 “에티오피아”라는 범주가 해체된다. 한편, 에티오피아라는 통일적인 단위는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 그리고 여기에 관계된 이집트 같은 외부의 ‘적’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성립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은 오히려 ‘국민국가’라는 범주가 매우 유동적이고 불안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5장은 국민국가 범주 바깥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의 활동 과정에서 참전의 의미가 전유되는 장면을 발견한다. 난민은 국민국가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 ‘적’이자 ‘다른 인간형’으로 간주되지만, 한국의 에티오피아 난민은 참전의 역사를 통해 ‘고마우면서 불편한 존재’라는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참전용사 담론은 에티오피아의 참전을 되갚아야하는 ‘선물’로 구성하고, 포괄적인 국제개발의 형태로 이를 되돌려준다. 하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난민은 한국의 ‘환대’를 다시 상환하여 양측의 관계를 연장한다. 또한, 그들은 한국 정부의 난민 심사제도를 비판하며 “참전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에티오피아 난민이 발휘하는 정치적인 행위자성은 참전용사 담론이 상상하는 “에티오피아”의 허구성을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에티오피아를 연결하는 참전용사 담론은 하나의 서사로 모든 이야기를 환원한다. 담론은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는 상상된 “냉전”의 세계사를 구성하는 데 요긴한 역사와 기억을 끌어당기고, 그렇지 못한 서사를 말소시킨다. 그러나 완벽한 질서를 구축한 것처럼 보이는 담론은 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어긋나버린다. 본 연구는 단일한 거대서사로 상상되어 온 20세기 냉전사를 복수의 서사들이 중층적인 맥락에서 상호작용하는 역사들로 재구성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는 결국 ‘국민국가’라는 범주의 예측 불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연구자는 본 연구에서 제시한 내용을 근거로, ‘국민국가’라는 일반 범주를 질서 있게 배치된 코스모스가 아닌, 예측 불가능하게 충돌하고 결합하며 새롭게 생성되는 카오스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참전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국민국가가 상상되고 구성되는 카오스적인 방식들을 따라갔던 이러한 시도가 인류학적 현장을 물리적 실체로 환원하지 않는 연구의 한 사례로 읽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