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제목
석사 2021 원유빈 남성 중심적 IT 산업에서 여성 개발자의 적응과 대응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지도교수: 김현미

키워드: IT 산업(ICT 산업) ;  소프트웨어 개발자 ;  테크-페미니스트 ;  여성 개발자 ;  커리어 여성 ;  성별 분업 ;  과로 노동 ;  능력주의 ;  대응 전략 ;  Information Technology(IT) industry ;  software developer ;  tech-feminist ;  women developer ;  career woman ;  gendered division of labor ;  overwork ;  meritocracy ;  coping strategies

본 연구는 다양한 트랙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된 20-30대 여성들에 관한 연구이다. 그중에서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비전공 출신 여성 개발자들의 입직 전후 과정을 통해, 남성 다수의 노동 시장인 IT 산업 내 여성들의 적응과 대응 과정을 분석한다.
IT 산업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됐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성비는 남성이 약 90%에 달한다. 이러한 남성 다수의 구조는 컴퓨터에만 몰두해 대면 의사소통 능력 등 ‘소프트 스킬’은 업무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소위 ‘너드(nerd)’, ‘공돌이’식 개발자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담론의 도래 이후 개발자의 수요와 공급은 빠르게 늘었고, 최근에는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비전공자 남성과 여성도 IT 업계로 다수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수요 증가에는 국가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정보통신 분야의 국가기간 전략사업 직종 훈련 과정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의 제3차 직업능력개발 정책에 따라, 국비 지원 교육 과정을 통해 연계되는 저임금 중노동 일자리가 다수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 국비 지원 교육 과정에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여성의 참여도가 늘었다. 더불어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 직업학교 출신, 고비용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인 ‘부트캠프’ 출신 등 컴퓨터 관련 대학 전공자 외에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개발자가 된 청년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루트에 따라 IT 산업 내에는 개발자에 대한 처우 또는 발전 가능성 등을 기반으로 하는 피라미드형 노동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구조 아래 청년 개발자들의 노동력은 입직 시의 낙관적인 미래와는 별개로 쉽게 소모되고 교체된다. 본 연구는 이 수직적인 노동 구조로 유입되는 20-30대 비전공 여성 개발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경험에 주목한다. 이들은 국비 지원 정책의 붐이 일었던 2018년을 전후로 IT 산업으로 유입된 저연차 여성들이다.
연구자는 디지털 참여관찰과 심층면접을 통해 업계의 구조와 남성 중심의 성별화된 문화를 조사하고, 이에 여성 개발자들이 적응하고 대응해나가는 방식을 분석했다. 이들의 주요 입직 요인은 업계의 ‘유연성’과 ‘자율성’의 특성에서 기반하지만, 여성들은 이 특성 아래서도 모순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여성은 프론트엔드’, ‘남성은 백엔드’로 구분되는 성별 분업을 기반으로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요구된다. 남성의 경우 개발자로 커리어를 이어가며 고위 관리자로 상승하지만, 여성의 경우 기획 및 소통을 담당하는 중간 관리자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여전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현상을 경험하는 등 임시 노동자로 인식된다. 즉, 여성 개발자의 일은 ‘유연성’을 강조하지만 결국 ‘불안정성’에 기반해 지속적인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하는 ‘디지털 창의 노동’의 성격을 갖는다.
여성들은 ‘여성’과 ‘비전공자’라는 이중적인 정체성 안에서 지속해서 노동 시장에 머무르기 위한 전략을 취한다. 첫 번째 전략은 ‘꾸밈’과 ‘의사소통 방식’ 등 일상적인 영역에서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도 여성임을 인식하지 않고자 하며, 성차별은 구시대적인 것으로 정의 내린다.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기계적인 자기 계발을 지속한다. 두 번째 전략은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사내에서 공과 사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소수인 여성들을 더욱 고립시켜 여성 선배를 찾을 수 없게 하는 ‘여성 멘토 부족’ 현상으로도 연결된다. 여성들은 동료를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소외감을 더욱 쉽게 느낀다. 또한 국내에서의 커리어 패스에 대한 비관으로 해외로의 이직을 꿈꾸기도 한다. 마지막 전략은 여성 개발자 모임을 통해 일터 밖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업무 외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반영한 개발물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거나, 여성 후배에 대한 멘토링을 자처하고 이직 정보 공유 등 여성 간의 연결성을 확장한다. 이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등장으로 업계에 비로소 소통 능력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단일화된 남성 중심의 가치를 해체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개발물 또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여전히 언제든 초과 근무가 가능하고, 소통에는 취약한 너드형 남성을 바람직한 노동자상(相)으로 단일화된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개인화된 전략에는 많은 한계가 뒤따른다. 이렇게 남성 중심의 단일한 노동자상은 지속적인 추가 노동과 사회적 과로를 유발하는 신자유주의 자본가 위주의 수직적 노동 구조를 유지하게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IT 업계의 장점인 ‘유연성’과 ‘자율성’의 실질적인 발현을 위한 노동자상을 재설정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의 유입과 노동 시장의 재편을 제언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