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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01/17 [한겨례] [인터뷰] 난민·인신매매 외국인들의 인권을 ‘어필’하다
작성일
2022.01.19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김종철(51)변호사는 11년간의 ‘공익법센터 어필’(이하 어필)에서의 활동을 “소풍”에 빗댔다. 낯선 곳으로 향한다는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는 한편,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새 나도 모르게 한뼘 성장하던 소풍의 기억. 2011년 난민·무국적자 등 취약한 외국인들의 법률 지원을 위해 어필을 설립한 김 변호사는 “어필의 시즌2와 인생의 시즌2”를 위해 오는 24일 어필에서의 ‘기분 좋은 소풍’을 끝낸다고 했다. 김 변호사를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만났다.


■ 어느 날 ‘범생이’에게 찾아온 난민

외국인 인권변호사로서 김 변호사의 삶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법연수원에서 난민 지원단체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욤비(56)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콩고 출신 방송인 겸 유튜버 조나단(22)의 아버지로도 알려진 욤비는 콩고 정부의 비리를 알리려다 위험에 처했고, 2002년 한국으로 망명해 난민 신청 절차를 밟고 있었다. 욤비의 법률 지원을 위해 그를 만난 김 변호사는 곧바로 욤비가 들려주는 얘기에 “매료됐다”고 했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모범생 김 변호사에게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건넌 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같은 삶 그 자체였다. “저는 소위 ‘범생이’로 남들이 기대하는 삶,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요, 욤비 같은 난민들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줘서 ‘해피엔딩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다만 전업으로 공익 변호사의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취약한 외국인에게 무료로 법률지원을 하는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후원금만으로 사무실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 국내에는 난민·무국적자 등 취약한 외국인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법률 단체가 없었다. 사업연수원 수료 후 들어간 로펌에서 절반은 일반 송무 업무, 절반은 공익 사건을 해나가며 고민하던 김 변호사에게 어느 날 동료 변호사 두명이 시드머니 2천만원을 건넸다. 다니던 로펌에서도 김 변호사가 독립할 수 있도록 1년 동안 인큐베이팅을 해줬다. 김 변호사는 “주변에서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며 “처음에는 ‘사무실을 지속하지 못하게 되면 닫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감사하게도 후원자 덕에 지금까지 어필이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 횡행하는 외국인 인신매매…처벌조항 없는 ‘인신매매 방지법’흔히 ‘외국인 인권’이라 하면 난민·무국적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김 변호사는 외국인 인신매매 사건, 국외 진출 한국 기업의 인권문제도 도 중요한 외국인 인권문제라고 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사건에는 인신매매와 글로벌 기업에 의한 저개발국가 내 인권침해 문제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외국인 인신매매 사건은 공연 비자로 입국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 강요를 꼽을 수 있다. 주한미군 부대 근처에서 공연하기로 계약을 맺고 공연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에게 업주는 계약된 최저임금을 주는 대신 “손님에게 술을 얻어 마시면 이 중 일부를 급여로 주겠다”며 ‘음료 구걸 행위’를 강요한다. 이른바 ‘주스 포인트’다. 주스 포인트를 채우지 못한 여성에게는 성매매가 강제되기도 한다. 본국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외국인 여성의 취약함을 이용한 인신매매 행위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이런 취약성을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행위는 유엔(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 상 인신매매에 해당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업주를 인신매매죄로 처벌하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13년 도입된 형법 289조 인신매매 조항은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 적출을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조항의 모호함과 더불어 수사기관이 요구하는 ‘천상의 피해자성’으로 인해 사실상 이에 따른 가해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수사기관은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에게 천상의 피해자성을 요구하고 있어요. ‘피해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잠시 외출이 가능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물리적으로 갇혀서 지배당해야만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건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천상의 피해자성을 요구하는지 의문입니다.”김 변호사는 이주 어선원에 대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도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변호사는 2011년 사조오양 원양어선에서 일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 가해진 임금체불·폭행·성추행 사건을 밝혀 2018년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인신매매 척결 영웅상’을 받은 바 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이주어선원이 한국인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의 대부분을 잡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한 한국 업체가 이들의 여권을 뺏은 상태에서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임금을 주고 하루 18시간씩 원양어선에서 생선잡이를 시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에 “이주어선원에 대한 임금 차별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이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 변호사는 “우리가 먹는 수산물은 이주노동자들의 착취로 올라온 건데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투명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정부와 여당은 국내외 비판을 의식해 지난해 4월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인신매매방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김 변호사는 인신매매방지법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신매매는 사람의 신체를 사고판다는 개념을 넘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묘하게 개인의 약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현대판 노예제’로 진화했다. 또 다른 인신매매 피해자가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이 중요한데, 인신매매방지법은 이를 형법의 영역으로 넘겼다.그러나 피해자가 ‘천상의 피해자’가 아닌 이상 가해자 처벌이 요원한 한국 사회에서 이 법은 발의 당시부터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보호와 가해자 처벌은 긴밀하게 연결되는 건데 가해자 처벌조항 자체가 없다. 인신매매자들이 처벌되지 않으면 유사 사건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 비판에도 처벌조항 없는 법이 통과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인종주의 타개해야 할 정부가 회피·혐오 강화해”약 3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는 해외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의해 벌어지는 현지인 인권침해 및 환경권 침해 등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도 당부했다. 글로벌 거대 기업의 등장으로 인권침해의 주체가 국가에서 기업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요즘 기업의 권리침해 문제도 왕왕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인니팜법인은 2019년 9월 별다른 화재 예방 조처 없이 팜 농장을 운영하다 큰 불을 일으켰고,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렌갓 지방법원으로부터 환경보호 및 관리법 위반으로 약 180억원 규모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 변호사는 “기업이 사업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에 대해 무제한에 가까운 관용을 보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이 밖에도 김 변호사는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해 법무부가 국민의 반대여론 차단을 위해 ‘특별기여자’란 생소한 용어를 써 가며 ‘난민’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혐오를 사실상 인정한 것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외국인 보호소 문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운용되는 듯한 난민 심사 제도 등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갔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법과 정책 속 인종주의가 정서적 인종주의와 결합해 서로 강화하면서 진화해왔다”며 “정부가 이를 타개해나가야 하는데, 회피하거나 기존의 인종주의를 강화하는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렇듯 산적한 외국인 인권문제를 두고 어필 변호사 생활을 접는 게 아쉽지는 않을까. 김 변호사는 “저도 여기서 11년 일했고 어필도 11년인데, 어필의 시즌2를 위해서는 설립자인 제가 없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남의 이야기에 매료돼 ‘더 나은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했지만 결국은 제 삶의 이야기가 더 나아졌다. 11년간 멈추지 않고 일을 해왔는데, 당분간은 지난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