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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5주년 감사예배(9/26) 설교문, 정종훈 목사(삼애교회 2대 담임)
작성일
2021.10.03
작성자
삼애교회
게시글 내용

어떤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할까?

(민수기 11:24-29, 야고보서 5:13-18, 마가복음 9: 42-50)

정종훈 목사(삼애교회 2대 담임)


오늘은 삼애교회가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5년 전 삼애교회를 창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 15년 동안 삼애교회를 보호하시며 자리 잡게 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함께하시며 삼애교회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창립 이래로 삼애교회를 자신의 신앙공동체로 선택하시어 애정과 열정을 다하며 가꾸어오신 삼애교회 교우 여러분의 수고를 치하하며 2대 담임목사를 역임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삼애교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있는 주일예배에 부족한 사람을 초청해주시어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눌 기회를 배려해주신 정용한 목사님과 교회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진행되는 창립 15주년 기념 주일예배에 면대면으로 또는 온라인으로 참석하신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삼애교회는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지닌 보편성 위에서 창립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삼애교회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애교회는 수많은 ‘하나님의 교회들’ 가운데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또 하나의 다른 교회가 아니라 존재해야 할 자기만의 분명한 이유를 가진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삼애교회는 연세대학교 부속기관으로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선교사와 선각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세워졌고, 진리와 자유를 기반으로 기독교적 인재를 배출해왔으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선도하는 가운데 민족과 세계를 섬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는 백낙준 선생님의 말씀대로 연세의 연세로 머물지 않고, 민족의 연세로, 세계의 연세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삼애교회는 연세의 교직원과 동문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탈북학생,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노동자까지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삼애교회는 배민수 목사님의 삼애정신을 계승하는 교회입니다. 배민수 목사님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셨고, 농민들을 계몽하며 국민 삶의 질을 고양시키고자 땀을 흘린 농촌계몽운동가이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선 애국자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사랑과 농촌 사랑과 노동 사랑, 삼애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쏟아부은 신앙인이셨습니다. 그래서 삼애교회는 그분의 삼애정신을 이정표로 삼아 새롭게 해석하고 구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삼애교회는 교회 일치의 전통을 중시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매주 성찬 예식을 거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은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현장에서 출발하여 십자가 처형을 당한 골고다 언덕까지 묵상하며 기도하는 순례자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만들었습니다. 세계교회는 교회 일치를 위해 9년 간의 시험사용을 거쳐 1994년부터 교회력에 따른 성서정과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일치의 전통을 직시하며 삼애교회는 매주일 성찬식을 거행하고, 삼애동산 기도길을 만들어 사용하며, 설교자는 성서정과를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애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직접 호흡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아파트 숲을 지나서 고봉산 자락의 삼애캠퍼스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 숲을 지나는 동안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멋진 전경이 갑작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멀리 가지 않고 삼애교회의 주일예배만 참석해도 환경이 주는 힐링과 기쁨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삼애교회에 주신 특별한 선물이자 우리의 자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보편성과 자기만의 특성을 지닌 삼애교회가 창립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주변 교회들에 비하면 짧은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애교회는 성숙한 신앙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삼애교회가 어떤 신앙공동체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지를 주어진 성서정과의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삼애교회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억압과 착취의 삶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영을 모세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과 교감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막에 모인 이스라엘 장로들이 당신의 뜻을 명확히 깨닫도록 당신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서 장로들은 이집트 생활에 미련을 둔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막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두 사람 엘닷과 메닷에게도 장막에 모인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어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장막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예언을 하자 여호수아는 그들의 예언 활동을 중지시킬 것을 모세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예언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삼애교회는 하나님의 영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찾으며, 찾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실행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친히 창조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보증하셨습니다. 사람을 당신의 청지기로 삼아서 잘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코로나19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세계공동체의 삶을 비정상으로 만든 배경에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외면하고 자연환경을 제멋대로 훼손한 사람들의 무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처럼 대접받을 권리를 보증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어 도우며 살게 하셨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폭력이 멈추지 않는 것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삼애교회는 영성 깊은 예배와 내실있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실행하는 영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삼애교회는 기도가 끊이지 않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경은 고난을 받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병든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라고 말합니다.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가뭄으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을 때 드디어 비가 내렸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찾은 뜻을 실행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께 낱낱이 고하는 가운데 고난의 무거운 짐을 벗는 것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의 문제와 상황을 중보하는 가운데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기도는 세상의 죄를 공동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없는 신앙공동체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삼애교회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자신과 집단의 존재를 바꿉니다. 우리가 자신과 집단의 죄를 돌이키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은 기도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기도로써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민족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인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의 기도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도록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양식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양식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삼애교회는 삼애동산 기도길을 소중히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삼애교회는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은 목에 큰 맷돌을 달고 차라리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신앙공동체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아직 신앙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신앙공동체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작정했지만, 아직 성숙한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길 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앙공동체 안이든 밖이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입을 것이 없어서 헐벗은 사람들, 나그네로서 유리 방황하는 사람들, 질병으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감옥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라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당신과 일체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자 열쇠입니다.


삼애교회는 신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어렵게 사는 지극히 작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신앙을 도전해야 하고, 교회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줌으로써 신앙의 진면목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직 신앙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차별이나 위선으로 인해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탈북자나 난민처럼 아직 정착하지 못한 나그네들을 사랑으로 환대해야 합니다. 부나 명예나 권세가 없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들에 게 관심을 주지 않거나 사랑을 나누지 않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애교회는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주변의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삼애교회는 지옥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생명을 추구하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경은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하나를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두 손을 갖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을 버리고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하나를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두 발을 갖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발을 잃더라도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하나를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두 눈을 갖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눈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지옥이란 무엇입니까? 지옥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과 욕망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고, 이웃과 분리되고, 하나님의 피조세계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사랑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치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피조세계와 공존하는 것입니다.


삼애교회는 지옥의 삶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은밀하게 가서 죄를 범하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안목의 정욕과 쾌락을 추구하느라 무슨 짓이라도 허용하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최고의 환경인 에덴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척박한 광야라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환경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하나님처럼 대하며 사랑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삶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관계를 설정하고 사는 순간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삼애교회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며 영원한 생명을 당장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삼애교회는 서로 화목한 신앙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경은 소금이 좋은 것이지만 짠맛을 잃으면 다른 것으로 대신 짜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신앙공동체 가운데 소금을 쳐서 서로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소금은 적절한 간을 통해서 음식을 맛있게 합니다. 소금은 음식을 썩지 않게 하며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소금은 사람을 건강하게 치료하는 약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소금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데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지체가 소금처럼 각각의 필요한 기능을 제대로 감당할 때,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이 각자의 은사를 잘 감당할 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각자의 신앙적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누구라도 자신의 은사와 책무를 잘 감당하고,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모든 신앙공동체는 화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삼애교회는 화목한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차별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두 손을 들어 환대하고 어떤 사람은 문전박대할 수 없습니다. 연세인과 비연세인 사이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이 배운 자와 별로 배우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이 소유한 자와 별로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와 권력이 없는 자 사이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별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의 차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차별도,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라도 각자가 지닌 은사와 하나님의 형상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처럼 대하며 사랑하기로 작정한다면, 우리는 화목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애교회는 각자의 은사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화목한 신앙공동체로 아름답게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삼애교회 교우 여러분, 삼애교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5년 동안 삼애교회가 걸어온 모습을 겸허하게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자신과 삼애교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냉철하게 직시하며 희망찬 내일의 모습을 새롭게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삼애교회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교회로서, 기도가 끊이지 않는 교회로서, 지극히 작은 자를 소중하게 섬기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교회로서, 서로 화목한 교회로서 우뚝 세워짐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세상에서 칭송받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