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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중앙일보] ‘꼼수 집회’에 칼 빼든 경찰…"불법 전력 단체 집회 금지" 두고 논란도
작성일
2023.05.19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꼼수 집회’에 칼 빼든 경찰…"불법 전력 단체 집회 금지" 두고 논란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16~17일 서울 도심 일대에서 총파업을 결의하는 1박2일 상경 집회를 이어갔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돗자리 등을 깔고 노숙을 하는 모습. 뉴스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16~17일 서울 도심 일대에서 총파업을 결의하는 1박2일 상경 집회를 이어갔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돗자리 등을 깔고 노숙을 하는 모습. 뉴스1


“일상의 평온을 심대하게 해친 이번 불법집회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9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처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통상 경찰청장의 일정이 전주나 최소한 전일에는 미리 공지되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 회견은 이례적으로 약 3시간전쯤 알려졌다. 글자 그대로 긴급하게,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윤 청장은 우선 불법 집회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노숙을 하며 1박 2일간 상경 집회를 벌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행부에 대해 오는 25일까지 출석을 요구했으며, 불응시 체포영장을 받아 검거하겠다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민주노총 결의대회와 지난 1일 열린 노동자 대회에 대해서도 병합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장이 개별 사건에 대해 소환 날짜와 체포영장 발부 계획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더 이목이 쏠린 건 향후 대응에 대한 내용이었다. 윤 청장은 건설노조를 지목하며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를 금지ㆍ제한하겠다”고 말했고, “시민 불편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집단 노숙에 대해서도 개선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조 불법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윤 청장은 특히 노숙 투쟁을 주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행부 5명에게 오는 25일까지 출석을 요구했고, 불응시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고 덧붙였다. 뉴스1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조 불법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윤 청장은 특히 노숙 투쟁을 주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행부 5명에게 오는 25일까지 출석을 요구했고, 불응시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고 덧붙였다. 뉴스1



한 경찰 관계자는 “민주노총 등이 그동안 벌여온 ‘꼼수 집회’에 대해 칼을 빼들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1박 2일 집회 당시, 경찰은 오후 5시까지만 집회를 허가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해가 진 뒤에도 구호를 외치거나 행진하는 등 집회를 이어갔다. 대신 여기에 ‘집회’가 아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문화제 참여’라는 명목을 붙였다. 한 일선서 경비과장은 “똑같은 집회에 촛불 문화제나 음악회, 추모제 등 이름을 갖다 붙이는 일은 무수히 많다. 문화제라고 하면 야간 집회를 허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아니까 꼼수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청장이 이날 ‘불법 전력’을 거론하며 유사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오래된 관행을 더는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경고다.


“불법 전력 단체, 노숙 집회 금지”에 “근거 없다” 비판도

불법 집회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경찰 안팎에서 반기는 반응도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두고 논란도 적지 않다.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경찰은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5조, 제12조 등을 들고 있다.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해서는 안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를 두고는 경찰 내부에서조차 “불법 집회 전력이 있다고 해서 공공의 안녕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며 집회를 금지하거나 해산하면 소송을 걸텐데, 법원에서 경찰 손을 들어줄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일선서 정보관)는 말이 나온다.

또한 윤 청장이 예고한 집단 노숙 등에 대한 규제 역시 의지를 밝혔다는 의미일 뿐, 현행법상 마땅히 금지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자회견 직후 “노숙이나 문화제 등에 대해선 아직까지 법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집시법 검토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수사 대상에도 그 부분에 대한 건 없다”고 설명했고, 윤 청장조차 “국회에 계류중인 야간 집회시위 제한과 소음규정 강화 등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제 조건을 단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찰이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집시법을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오며, ‘물대포’ 등의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경력을 통한 강제 해산 등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논란이다.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용산 대통령집무실 방면으로 거리행진 진행했다. 이날 집회와 행진 등으로 퇴근 시간대 도심 도로 곳곳에서 극심한 정체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용산 대통령집무실 방면으로 거리행진 진행했다. 이날 집회와 행진 등으로 퇴근 시간대 도심 도로 곳곳에서 극심한 정체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경찰은 현장 상황을 잘 살펴서 대응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리적 검토도 충분히 할 것이며,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무조건 금지한다는게 아니라 현장에서 집회 주최 인원들과 대화하고 상황을 판단해 하겠다는 방안이라 문제가 없다”며 “경찰이 자의적으로 집회ㆍ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윤 청장의 회견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현행 집시법이 제한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불법인지 적시하지 못한다”며 “법으로 노숙을 금지ㆍ제한하겠다니 창의적이다. 다가올 무더위에 한강 둔치에서 치맥을 하고 돗자리 펴고 잠을 자는 것도 규제하겠다고 나오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