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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교수평의회

연세대학교 교수평의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1960년 10월에 구성되었다. 1960년 4월 혁명이후 학원의 민주화 운동으로 연세대학교의 학교기구 및 행정이 대폭 개편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이사장과 총장직이 분리되고 학사정책의 의결기구로 교수평의회가 설치되었다. 당시는 4월 혁명으로 인하여 자유의 물결이 거셌던 시기였고, 연세대학교에서도 학원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특히 교수들은 신분보장문제와 학교기구개편을 요구하고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1960년 5월 18일 학교기구개편위원회가 교수회의 결의로 구성되고 학교기구개편 초안이 이사회에 회부되었다. 당시 이사회와 교수회간의 갈등이 있기는 하였으나 의견일치를 보았으며, 이에 이사회는 결의문에서 교수평의회를 두기로 명시하였다.

 

당시의 결의문에 따르면, 교수평의회는 대학의 학사정책을 수립하는 의결기관으로서 총장, 부총장, 대학원장, 학장, 도서관장, 교목 및 각 대학 교수대표 1명으로 구성되었고, 총장이 교수평의회의 의장이 되었다. 당시 교수평의회의 기능은 1.교육목적 범위내에서의 학사정책 수립, 2.대학, 학과, 연구소 및 기타 부설기관의 설치와 변경 그리고 폐징에 관한 건의, 3.학교내 중요 규칙의 제정과 변경 및 기타 총장의 자문사항의논, 4.이사회에서 설치하는 연락위원회의 연구결과에 의하여 기타 기능이 추가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과대학의 자주성에 관한 일과 기타 학교기구개편에 관한 일을 총장이 교수평의회와 협의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실현하도록 되어 있는 점과 법과대학, 공과대학, 음악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등의 증설에 관한 연구를 교수평의회에 위촉하여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교수평의회의 위상과 활동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초대 교수평의회는 1961년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1974년 교수평의회

1961년에 해체된 교수평의회는 1974년 11월 재구성되었다. 1974년 9월 29일 정기 연고전이 끝난 후 학교행정전반에 걸친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학교행정이 마비됨에 따라 10월 8일 교무회의에서는 휴강조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10월 18일 루스채플에서 소집된 교수회의에서 교내사태의 수습을 위한 대학개혁안이 당시 박대선 총장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 발표요지의 첫째가 교수평의회 및 대학의회의 발족이었다. 당시 교수평의회는 대학제도의 민주화라는 대전제 아래 학교행정의 견제기구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이때의 교수평의회 회칙을 보면, "대학운영에 교수가 적극 참여함으로써 본 대학교의 이념구현과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평의회의 구성은 교수와 부교수 중에서 선임된 평의원으로 하였으며, 교수평의회의 기능으로서 심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었다.

 

- 대학의 제반 규칙의 제정과 개편에 관한 사항 
- 대학원, 대학, 교양학부, 도서관, 연구소 및 기타 중요 부속기관의 설치와 분합 및 폐지에 관한 사항 
- 총장과 부총장의 선임시 그 자문에 관한 사항 
- 교직원 인사기준에 관한 사항 
- 예산편성의 기본방침과 결산보고에 관한 사항
- 학사운영에 관한 사항
- 교수의 연구환경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
- 학생의 장학과 복지 및 지도에 관한 사항
- 총장이 문의한 안건에 대한 사항
- 대학운영에 관한 기타 중요 사항

 

당시에는 전체 교수회가 있었으나 전체교수가 한자리에 모여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었다. 따라서 교수평의회는 교수들의 대의기구로서 교원인사규정, 연구교수제도, 교수연구의 활성화방안, 면학분위기 쇄신 등 교육여건에 관한 중요정책을 학교당국에 건의하였다.

 

그러나 법적지위의 미확보와 이에 따른 예산 문제 그리고 건의사항에 대한 대학당국의 수용태도 등으로 교수평의회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1년만에 해체되었다.

1980년 교수평의회

세번째 교수평의회가 1980년 4월에 출범하였다. 그러나 1980년 교수평의회는 당시 5.17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정국불안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1988년 교수평의회

네번째 교수평의회가 1988년 7월 21일 탄생하였는데 이는 현재 활동 중인 교수평의회의 모태가 되는 셈이다. 이때의 교수평의회의 발족은 1987년 6월의 대대적인 반독재국민저항과 곧이어 발표된 6.29선언에 즈음하여 사회전반에 걸친 민주화 분위기와 또 이에 다른 대학행정의 민주화와 대학운영의 자율화에 대한 요구의 팽배가 그 계기가 되었다.

 

1988년 4월 15일 8인의 교수들이 연세대학교 교수평의회 연구 및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합의하여 활동에 들어갔다. 이어 교수평의회 연구 및 준비위원회에 의해 교수평의회의 회칙 초안이 작성되고 최종 수정안이 1988년 7월 6일 전체 교수들의 투표에 붙여져 확정되었다. 확정된 회칙에 따라 연세대학교 교수평의회는 1988년 7월 2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전체교수들의 대의기구로서 출범하게 되었다.